호주에서 처음으로 병원 간 날 Diary

몇 달 전에 벌레한테 물린 곳이 1주일 전부터 심상치 않게 부어오르고 점점 크게 번지더니 오늘 아침에는 급기야 물집이 나면서 엄청 심각해지고 이에 더해 온 몸에 엄청 간지러운 두드러기까지 나서 부랴부랴 아침에 응급실로 직행했다.

처음에는 집 근처에 문 연 클리닉을 찾아갈까 생각했는데 어짜피 전문의 있는 병원에 가라고 할 것이 뻔하기에(이전에도 덜 심각하게 이런 적이 있었는데 클리닉의 의사는 잘 모르더라. 그 때는 운 좋게 원래 있던 알레르기 약 바르니 나았는데 이번엔 어림도 없더라는) 욕 먹을거 각오하고 응급실로 갔다. 이 곳에서 응급실은 정말 응급환자만 받기에, 그렇다고 온 사람을 쫒아내지는 않지만,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도 상태가 심각해서인지 진지하게 받아들이더라. 그도 그럴것이 호주에서는 집 정원에서 거미에 물렸다가 응급조치 안 받아서 죽는 사람이 꽤 많기 때문에 벌레에 물린 것은 아주 심각한 사항이다.

집 근처의 작은 메디컬 센터(한국으로 치면 동네 보건소 정도인데 호주 의료 시스템은 아프면 무조건 이 곳을 찾아간 다음 필요시 병원으로 연결해준다)는 두 번 간 적 있는데(모두 알레르기 때문으로 내 피부가 원래 워낙 민감하다) 병원은 처음이라 조금은 긴장. 뭐 원래 병원이라는 곳이 안 아픈 사람도 아프게 만드는 마법과도 같은 곳이기도 하지만...

응급실을 들어가보니 일단 당직 간호사에게 상태를 보이면 이 곳에서 의사한테 보이냐 자기들이 간단하게 치료하냐를 결정하는 시스템인것 같던데(확실치는 않다) 나는 의사한테 보여야 하는 것으로 결정이 나서 다시 안쪽의 대기실로 들어갔다. 이 곳에서 메디케어 카드 보여주며 이런저런 인적사항을 입력한 다음 2-3분 정도 기다리니(생각보다는 빠르게 모든 것이 진행되어 조금 놀람) 간호사가 응급실로 안내하며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상태를 살펴보더니 의사를 부르더라. 그리고 그 의사가 20분 정도 아주 자세하게 어떻게 언제 물렸냐부터 시작해서 언제부터 악화디었고 어떤 증상이며 다른 곳은 안 아프냐 등등 수십가지 질문을 하며 물린 곳을 정밀하게 검사하더니 이런 것은 처음 본다며 미스테리하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더리 피검사를 해서 독이 있거나 다른 심각한 병이 있는지 알아봐야겠다고 허가를 바라길래 예스.

피를 뽑고 그 곳으로 다시 진정하라며 소금 들어있는 뭐를 집어넣어줬는데(워낙 긴장해서 잘 들리지도 않고 말도 엄청 버벅거렸다는) 뭔가 시원하면서 이상한 느낌. 그리고 나중에 다시 뭔가 집어넣을 수도 있다며 바늘은 반창고로 꽉 붙혀서 그대로 꼽아둔 채(엄청 무서웠다) 다른 의사를 불러오겠다고 해서 10분을 더 기다림. 그리고 다른 의사가 와서는 응급실 침대에 웃통 벗고 누워서 더욱 자세하게 검사를 했는데 역시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는데 이 때 나는 완전히 겁에 질려버림. ㅠ_ㅠ

그리고 피검사 결과 나올 때까지는 일단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침대에서 누워서 기다리는데 너무 긴장해서 누울 수도 없더라. 그런데 이 곳 응급실은 한국과는 다르게 엄청 조용해서 좀 신기하긴 했다. 퍼스에서 제일 큰 병원의 응급실인데도 환자는 거의 없고 있는 환자들도 대부분 경미한 부상. 한국의 응급실에 자주 간 경험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호주가 사건사고가 없기는 한가 보다고 생각.

침대에서 한참을 기다리는데 또 다른 의사 한 명이 입으로 똑똑 하며(커튼으로 가려놨으니 손으로 똑똑거리며 들어올 수 없으니) 들어와서 상태 구경하고 감. 간호사들도 다들 커튼을 바로 젖히지 않고 입으로 똑똑 하는 것을 보니 프라이버시 지켜주려고 그런 듯. 그러고보니 오늘 만난 의사들은 다 여자네.

그렇게 한 30분을 기다렸는데 다행히도 피검사는 아무 이상이 없어서 일단 심각한 것은 아닌 것으로 결정나서 안심의 한숨. 그런데 여전히 원인은 모르겠다며 피부 전문의랑 약속을 잡아줘서 화요일 아침에 다시 한 번 병원에 가야 한다. 제발 그 때는 원인 알고 처방 받아서 나았으면 하는 바람.

오늘 호주에서 병원은 처음 와봤는데 사람들이 한국의 병원에 비해서 서비스가 형편 없다고 해서 기대를 전혀 안 했는데 결과적으로는 한국에서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일단 간호사와 의사들 모두 친절하고 유머감각이 좋아서 좋았는데 다들 알겠지만 환자 입장으로는 이게 엄청 중요하다. 한국에서 병원이 정말 싫었던게 간호사며 의사들이며 모두 어찌나 불친절하고 권위의식에 으시대는지 그게 짜증났는데(한 번은 정말 의사를 그 자리에서 패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난 적도 있다) 일단 호주에서는 메디컬 센터에서도 그렇고 큰 병원에서도 그렇고 모두들 정말 친절하더라는. 그리고 병원시설도 오래된 외관에 비해 기대 이상으로 깨끗하고 최첨단이었다. 이에 더해 직원들의 일하는 분위기가 완전 화기애애. :)

아 그리고 따로 돈을 내지 않고 그냥 놔왔는데(돈 내는 곳 자체가 없었다) 메디케어에서 지원하는거 제하고 집주소로 청구서가 오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오늘의 병원 경험은 이것으로 끝이 난게 아니었다.

집에 와보니 토시가 다시 눈의 알레르기가 엄청 악화되어서 눈도 못 뜰 지경이여서 동물병원에 바로 전화해서 급하다고 약속 잡고 갔다왔다. 4달 전에 갔었는데 의사가 토시를 기억하더라는. Very Nice Cat이라고 몇 번이나 칭찬하며(야옹거리지도 않고 얌전하게 가만히 주사 맞고 눈약도 잘 바르게 가만히 있는다) 이번에는 더 강하고 좋은 약을 줄테니 1주일 후에 상태 확인하자며 간단하게 끝. 약 바르니 몇 분도 지나지 않아 눈이 좋아지더라.

이렇게 오늘은 하루를 병원에서 보냈다. 오늘의 교훈은 역시 건강이 최고라는...!

덧글

  •  승 2011/01/16 22:22 # 답글

    어서 원인이 밝혀지고, 별 거 아닌 일이기를 바라요. 그리고 무엇보다 어서 나으시기를!
  • 박건일 2011/01/16 22:32 #

    승 /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빨리 나았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너무 간지러워요. 흐흑.
  • souleee 2011/01/17 00:12 # 답글

    뉴질랜드 있을때 샌드플라이때문에 고생한 기억이 나네요. ㅠ
    얼른 나으시길 바랍니다. ! 무엇보다 건강이 쵝오!
  • 박건일 2011/01/17 19:39 #

    souleee / 감사합니다! 건강이 최고죠!
  • sunyoungc 2011/01/17 15:29 # 답글

    지금 캔버라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어서 오지랍에 말씀드리면, 보통 ED에 가시면 Triage nurse가 환자의 상태에 따라 priority를 정해서 의사를 보게되요. 금방 의사 보신거 보면 정말 좀 심각했나보네요. 그리고 호주의 사건사고가 없는게 아니라 마침 한가할때 가신 건일님이 럭키하신거구요 :) 저는 한국에서는 간호사가 아니었어서 한국시스템은 모르지만(한국 응급실 가본적 없음) 호주시스템은 알고보면 정말 합리적이라는... 한국시스템에 익숙하신 분들은 답답해 미치시지만요... 아무튼 얼른 쾌차하시길!!!
  • 박건일 2011/01/17 19:42 #

    sunyoungc / 그렇군요. 전 한국보다 여기 시스템이 훨 좋은 듯 하더군요. 한국은 병원이 정말 정신 사납고 다들 불친절하고 목소리 크면 장땡이고 으으으... 생각하면 병원에 대한 악몽같은 기억들만... 여튼 간호사라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한국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라면 이가 갈릴 정도로 싫었는데 여기에서는 다들 너무 좋더라구요.

    아 그런데 돈은 도대체 어찌 내는 것인가요. 나중에 청구서가 날라오는지... O_O
  • 쟈스틴 2011/01/17 20:17 # 삭제 답글

    어익후... 언능 쾌차하시길... 호주에서는 벌레에 한번 물리면 붓는것도 왕창 붓고 그래서 깜짝깜짝 놀랜다능...

    한국 병원은 미용관련 - 성형수실, 치과, 안과, 이비인후과 등등 - 을 제외한 일반 병원이나 응급실 시스템은 아무리 생각해도 호주랑 비교하면 시원찮은 듯 싶어요. 둘째 애기가 잔병치레가 좀 많아서 호주에서도 응급실에 몇번 갔다 왔고, 한국 가있는 동안에도 응급실에 갔다 왔는데, 의사와 간호사들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도 다르더라구요. 답답하면 막 소리지르고 그런 시스템(?)은 한국이 낫지만, 소리지른다고 일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일 없으면 벌크빌링이거나 아니면 집으로 청구서가 날아올 거예요. 그럼 그거 들고 동네 메디케어 오피스 가셔서 환급받으시거나 (미리 지불했을 경우) 아니면 수표를 줄텐데, 그거 받아서 청구서랑 해서 병원으로 편지 보내면 끝임다.

    전문의 예약하는게 지랄맞게 오래 걸려서 그렇지, 호주 의료시스템이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1인 추가요.
  • 박건일 2011/01/18 07:29 #

    쟈스틴 / 아핫, 그렇군요! 궁금한게 완전 풀렸네요. 몇 달 전에도 피부 때문에 의사와 상담했는데 그것도 환급받을 수 있겠네요. 역시 아는게 힘이군요... 덧글 감사합니다!!!
  • 이정화 2014/12/12 14:25 # 삭제 답글

    건일씨 저 기억나세요?
    저 그냥 한국에서 공무원해요
    공무원합격해서
    호주가 저를 안받아 주네요
    아이엘츠점수도 너무 높고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