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궁전>, 우리의 삶은 우연과 필연의 합

"나는 세상 끝까지 온 것이었고 그 너머로는 바람과 파도, 중국 해안까지 곧장 이어진 공허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가 내 출발점이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여기가 내 삶이 시작되는 곳이야."

우리는 흔히 1초 뒤조차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삶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예측불가능은 우리의 삶을 이해하기 힘든, 아니 가끔은 이해하기조차 싫은 그 무엇으로 만듭니다. 살면 살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이 불가사의한 삶을 우리는 왜 이토록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러한 질문에 어느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근접한 답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은 우연과 필연이 기묘하게 어울려 끊임없이 우리를 배반하는 이 삶이라는 물음표를 스스로 바닥으로 추락한 한 청년의 기구한 운명을 통해 해부합니다. 이 책은 삶의 나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새로운 출발을 해야만 하는 인간의 위대한 운명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한 순간의 어리석음으로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 인간의 초라한 숙명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많은 행복과 고통을 겪으며 세상을 알아갑니다. 하지만 절망적이게도, 이러한 경험은 우리를 더욱 지혜롭게 만들거나 완벽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인간은 그 결과를 알면서도 실수를 거듭하고야 마는 바보천치 같은 존재이며, 이러한 우둔함은 우리의 삶을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폴 오스터는 <달의 궁전>을 통해 끊임없이 삶을 그르치며 타락하는 우둔한 주인공에게도 새로운 삶의 시작이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그 이유는 책 어디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어떤 이유라는 것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왕에 주어진 삶이라면, 그 모든 불행과 고통과 슬픔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일런지도 모릅니다. 꿈과 이상이 충돌하고 현실과 비현실이 충돌하는 이 알 수 없는 삶은 그 이해불가능함 때문에 더욱 살아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누구 말처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뜨기 때문이죠. :-)

"이게 바로 인간의 외로움이야. 나는 속으로 말했다. 이게 바로 아무도 없다는 거야. 하지만 나는 더 이상 화가 나지는 않았고 느래서 지극히 솔직하게, 더없이 객관적으로 그 말을 떠올렸다. 2, 3분이 지나자 그 모든 일이 마치 몇 달 전에 일어난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찾던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 걸었다."

- 지금까지 읽은 폴 오스터 소설 중에서 <환상의 책> <공중 곡예사> <빵굽는 타자기>와 더불어 제일 재미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거대한 괴물> 말고는 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폴 오스터의 글을 읽을수록, 이 사람 정말 굉장한 괴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덧글

  • 새침떼기 2006/01/19 00:44 # 답글

    달의 궁전은 우연의 음악 다음으로 좋아하는 오스터 소설인데..:-)
    혹시 근래 나온 오스터 소설들도 보셨나요? 이 사람 작품 멀리한지 너무 오래 되서인지 슬쩍 땡기네요.
  • 박건일 2006/01/19 20:45 # 답글

    새침떼기 - 요즘 금전이 딸려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는데 폴 오스터 최근작은 아직 안 갔다놨더군요. 그래서 못 보고 있습니다. 흐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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